OECD 노인 고용률 1위의 이면 (생계형 노동과 자아실현의 차이)
숫자 하나가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한국은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용률이 37.3%로 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뉴스에서 이 통계를 접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수치를 꺼내며 '노인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논거로 쓰는 보고서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같은 해 한국의 노인 빈곤율도 한번 보겠습니다. OECD가 집계한 한국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입니다. OECD 평균인 14.2%의 세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가장 많이 일하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 이 두 문장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얼마나, 왜 일하는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 37.3%는 OECD 평균 13.6%를 크게 웃돌며 회원국 중 1위입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도달한 일본의 25.3%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단순히 한국이 역동적인 사회여서가 아닙니다. 이 숫자 뒤에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일하는가.
통계청 조사에서 한국 고령층이 계속 일하는 이유로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가 54.4%로 가장 높았습니다. '일하는 즐거움'은 36.1%,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4.0%에 그쳤습니다.
절반 이상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고 답한 겁니다. 그리고 이 비율이 왜 이렇게 높은지는 연금 통계를 보면 바로 납득이 됩니다. 2024년 기준 국민연금 평균 월 수령액은 약 66만원으로, 1인 가구 최저생계비 134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연금을 받으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연금이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니, 일터를 떠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 됩니다.
더 심각한 건 연금을 받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55~70세 인구의 퇴직 당시 평균 연령은 51.2세였습니다. 법적 정년인 60세보다도 훨씬 이른 나이에 주된 일자리를 잃는 것입니다. 국민연금 수급은 63~65세부터 시작되니, 최소 10년 이상의 소득 공백이 생깁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죠.
일하지만, 어떤 일인가
많이 일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일을 하느냐입니다.
2024년 노인일자리 종사자 중 단순노무 종사자가 34.2%로, 2012년 이후로 가장 높은 비율을 꾸준히 차지해왔습니다. 60세 이상 근로자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중 고령 노동자 비율은 2003년 9.8%에서 2023년 61.7%로 급증했습니다.
다시 말해, 60세 이상 일하는 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비정규직입니다. 재취업한 65세 이상 임금노동자 중 현재 일자리가 생애 주된 일자리와 전혀 또는 별로 관련 없다고 응답한 비중은 53.2%에 달했습니다. 평생 쌓아온 경력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것입니다. 은행 지점장이었던 사람이 주차 관리원으로, 교사였던 사람이 공원 청소부로 재취업하는 현실입니다.
그 결과가 빈곤율 통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어르신들이 비정규직 등 불안정성이 높은 일자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소득 변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전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이 1만 4,831명이라는 통계는 그 구조의 극단을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독일 노인은 왜 일터를 선택하는가
같은 '일하는 노인'이지만, 결이 전혀 다른 나라들이 있습니다.
독일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약 16% 수준으로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은퇴 후 일을 선택하는 노인들의 주된 이유는 사회적 연결감 유지, 자아실현, 혹은 단순히 집에만 있는 게 지루해서입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답변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독일의 공적 연금 소득대체율은 법적으로 48%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한선이 설정되어 있고, 육아와 돌봄으로 인한 경력 단절 기간도 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60대 후반에 스타벅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국 노인의 이유는 대체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또는 '용돈벌이'입니다. 401(k)와 사회보장연금이 합산되면 노후 소득대체율이 70%를 넘어서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한 구조입니다. 일은 선택지이지, 강제가 아닙니다.
한국과의 차이는 단순히 연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일이 '선택'이냐 '강제'냐의 차이입니다. 자아실현으로서의 노동과 생존을 위한 노동은, 같은 '일'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전혀 다른 삶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이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첫째, 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합니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66만원)이 최저생계비(134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 '은퇴 후 일하지 않아도 되는 노후'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보험료율 조정, 수급 구조 개편, 사적 연금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실질적인 노후 소득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둘째, 소득 공백 구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주된 일자리 퇴직 평균 연령(51.2세)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63~65세) 사이의 10년 이상 공백은 고령층을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모는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이 구간에 대한 소득 지원이나 재취업 연계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셋째, 노인 일자리의 질을 바꿔야 합니다. 단순노무직 중심의 공공 일자리 사업을 넘어, 고령 근로자의 경력과 전문성이 활용될 수 있는 일자리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비정규직 비율이 61.7%에 달하는 현실에서, 고용의 질 개선 없이 고용률 1위라는 숫자는 자랑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고도성장기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가족과 사회를 위해 일한 세대가, 노년에 폐지를 주워야 하는 현실. 그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실패입니다. OECD 노인 고용률 1위가 자랑이 되는 날은, 그 숫자 안에 생존형 노동이 아닌 선택으로서의 노동이 담겼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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